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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이 가해자에게 알려준 아내의 마지막 주소

  • 이현 기자
  • 입력 2026.09.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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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경기 광주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이 죽음은 단순히 한 사람의 광기나 우발적 분노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예고된 죽음이었다. 그것도 법이, 정확히는 우리가 만든 소송 제도가 스스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알려준 죽음이었다.

 

30대 공무원 A씨는 아내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동기는 명확했다. "이혼 소송에서 불리해질 것 같아서." 위자료, 재산분할, 양육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예상되자 앙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범행의 실행 경로를 보면 더 소름이 끼친다. 

A씨는 아내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몰라야 했다. B씨는 반복된 가정폭력을 피해 가족이 사는 곳으로 몸을 피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A씨는 법원이 보낸 이혼 소장 한 장으로 아내의 정확한 현재 주소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주소로 찾아가, 출근 시간에 맞춰 계단에 매복하고 기다렸다. 5살 딸이 보는 앞에서, 아내를 찔렀다.

 

■ "소장이 피신처를 알려준 꼴"

 

이 사건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피해자는 도망쳤고 신고도 네 차례나 했다. 검찰 송치까지 이뤄졌다. 국가가 만든 모든 절차를 성실히 밟았다. 

그런데 정작 그 국가가 만든 또 다른 절차, 즉 이혼 소송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권리 행사가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피해자는 몸을 숨겼지만, 소장은 숨지 않았다. 소장에 적힌 주소 한 줄이, 도망친 아내를 다시 가해자 앞에 세운 것이다.

 

이것을 개인의 비극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제도의 실패다. 현행 민사소송 구조는 소장에 원고의 이름과 주소를 기재하도록 하고, 이를 그대로 피고에게 송달하도록 설계돼 있다.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지 알아야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에서 출발한 규정이다. 

그러나 그 상식은 가정폭력이라는 비상식 앞에서 무력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대등한 당사자가 아니라,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할 의도를 품은 관계일 때, '알 권리'는 '죽일 권리'로 둔갑한다.

 

■ 뒤늦은 제도, 그마저도 '신청주의'

 

물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사소송법 제163조 개정에 따라 2025년 7월부터는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 우려가 있는 피해자가 법원에 신청하면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가려주는 보호조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주민등록법 시행규칙을 통해 주민등록표 열람이나 등·초본 발급을 제한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 제도들에는 공통된 맹점이 있다. 바로 '피해자가 알아서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 우려를 스스로 소명하고, 법원에 별도로 신청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혼 소송 자체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소진된 피해자에게, 이 제도의 존재 여부까지 스스로 찾아내고 절차를 밟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반복된 가정폭력 신고 이력과 검찰 송치 기록까지 있었던 이번 사건에서, 정작 법원이나 수사기관 중 누구도 이 피해자에게 "주소를 가릴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먼저 알려주지 않았다.

 

제도는 피해자의 신청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설계돼서는 안 된다. 가정폭력 이력이 확인된 사건이라면, 소송이 개시되는 순간부터 법원과 수사기관이 선제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조치를 안내하고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 

위험은 사후에 신청서를 받아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존재가 확인된 순간부터 제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 죽음 이후에야 움직이는 시스템

 

우리는 이런 비극을 겪을 때마다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제도의 사각지대였다." "관련 법을 정비하겠다." 그러나 정작 그 사각지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것들이다. 

소장을 통한 주소 노출 문제도, 신청주의의 한계도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안다는 것과 고친다는 것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거리를 메우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5살 아이는 엄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아이가 손가락의 상처보다 더 오래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은, 국가가 지켜주겠다던 절차 안에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소송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도록 방치한다면, 우리는 피해자에게 "도망치되, 정당한 권리는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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